[스포츠Q(큐) 김채은 객원기자] 새 글러브는 무척 딱딱하다. 바로 경기에서 사용할 수 없다. 길들이기가 필요한 까닭이다.
유튜브 채널 'MVPJ글러브작업실'에는 글러브를 길들이는 노하우가 가득하다. 2015년부터 블로그와 영상으로 작업 과정을 공유하며 서서히 입지를 다져온 채널 주인은 이제 사회인야구인은 물론이고 국가대표 프로야구 선수들까지 찾는 글러브 장인이 됐다. 그가 걸어온 길과 작업실은 장비 그 이상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정성과 열정으로 매만진 글러브에는 선수들의 믿음과 기대가 담겨 있다. 전례 없는 KBO리그의 인기 속에 그라운드 밖에서 점차 존재감을 키워가는 전찬호 MVPJ 글러브작업실 실장을 인터뷰했다.
MVPJ 글러브 작업실 전찬호 실장. [사진=본인 제공]
-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수원에서 글러브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는 활동명 MVPJ 전찬호입니다.”- MVPJ의 뜻은.“급하게 아이디를 만들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평소 MVP라는 단어를 좋아했고, 제 성씨가 전이라 뒤에 이니셜 J를 붙여 아이디가 완성됐습니다.”
삼성 라이온즈 이재익 글러브. [사진=본인 제공]
NC 다이노스 오영수 글러브. [사진=본인 제공]
- 직무를 소개하자면.“쓰임새에 맞게 전문적으로 글러브 후가공 작업을 합니다. 새 글러브는 생산된 상태 그대로는 딱딱해 경기에서 사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용 전에 반드시 길들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글러브를 길들인다는 의미는.“딱딱한 새 글러브를 경기에서 쓸 수 있도록 손에 맞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쉽게 말해 새 구두를 처음 신으면 발에 잘 맞지 않다가 편해지는 것처럼 글러브도 손에 맞춰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다만 글러브는 회전하며 날아오는 공을 잡아야 하기에 더 섬세한 과정이 필요합니다.”
길들이기가 끝난 글러브. 택배 발송 준비. [사진=본인 제공]
- 하루 일과는.“단순합니다. 하루 종일 글러브만 다룹니다. 보통 오후 1시에 출근해 빠르면 새벽 1시에 퇴근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작업에 쏟습니다. 중간중간 작업이 완료된 택배 발송, 전화 문의 응대, 방문 상담도 병행합니다.”
- 바쁜 시즌이 따로 있는지.“예전에는 한겨울과 한여름이 한가했지만, 요즘은 계절 구분이 없습니다. 오히려 겨울에는 더 바빠졌고, 여름은 휴가철이라 그나마 한가하지만 그마저도 예전보다는 훨씬 분주합니다.”- 글러브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초등학생 때부터 야구를 무척 좋아했어요. 그래서 중학생 때는 늦었지만 선수를 꿈꿨고, 야구부가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했죠. 그러나 ‘정말 야구를 하고 싶다면 1년 유급하라’는 말을 듣고 꿈을 포기했습니다.시간이 흘러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하니 과 동아리에 야구부가 생겨 다시 시작하게 됐습니다. 글러브를 사서 길들이던 중, 다른 방법이 있나 찾아보다가 홍대에서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는 형의 영상을 보게 됐어요. 영상에 끌려 글러브를 맡겼고, 직접 써보니 너무 재미있는 겁니다. 그때부터 글러브에 흥미가 생겨 여러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찾아보고, 전국의 야구 용품점을 다니며 유명한 분들에게 글러브를 맡겨보기도 했습니다.그러다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인들의 글러브를 작업해주기 시작했고, 선수였던 친한 동생이 주변 동료들의 글러브를 한꺼번에 가져오면서 작업 데이터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토대로 글을 작성해 '야용사(야구용품싸게사기)' 커뮤니티에 올렸더니 작업 문의도 많이 오는 등 반응이 예상보다 좋았습니다.점점 본업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로 일이 커졌고, 당시 집에서 작업하던 환경이 한계에 부딪히자 작은 작업실을 마련했습니다. 결국 과감히 퇴사하고 글러브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작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 어려웠던 점은.“취미로 시작했을 때와 달리 작업량이 비교할 수 없이 크게 늘면서 시간이 부족해졌습니다. 또한 처음에는 힘을 효율적으로 쓰는 법도 몰랐고, 글러브와 손 사이에 계속 마찰이 생겨 통증도 생기면서 신체적으로도 힘들었습니다.”- 작업을 맡긴 첫 프로 선수는.“지금은 은퇴한 정성곤(전 KT 위즈-SSG 랜더스) 선수가 처음으로 제가 작업한 글러브를 경기에서 사용했어요. 당시 핸드폰으로 경기를 보고 있었는데, 제가 작업한 글러브가 중계 화면에 나오는 모습을 보니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래서 그 경기를 여러 번 돌려보고, 관련 기사 사진도 다운받아 시간이 날 때마다 보곤 했습니다.”- 멘토나 롤모델 같은 존재가 있었는지.“기존에 글러브 작업을 하던 분들이 연구 대상이었습니다. 그분들을 분석하며 작업 방향을 잡아나갔고, 특히 아까 언급했던 홍대에서 작업실을 운영하시는 형께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또한 여러 업체 사장님들께서 다양한 기회를 주시면서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작업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밸런스입니다. 가죽을 재단하고 꿰매며 늘리고 뒤집고 끈을 끼우는 과정을 통해 장갑 형태가 완성되면, 저는 여기에 기능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합니다. 쉽게 말해, 가죽이 딱딱할 경우 부드러운 심 같은 부자재를 사용해서 밸런스를 맞춥니다.글러브는 단순한 구조처럼 보여도 제품마다 차이가 큽니다. 어떤 글러브는 손바닥이 넓고, 어떤 것은 포켓이 깊거나 얕기도 하죠. 이런 세세한 균형을 맞추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좋은 글러브의 기준은.“쓰기 좋고 손에 잘 맞는 글러브입니다. 다만 그 기준은 사람마다 달라서, 어떤 선수들은 고가의 글러브를 경기에서 사용하고, 또 어떤 선수들은 저렴하지만 충분히 기능하는 글러브를 선호하기도 합니다. 결국, 사용하는 사람의 기준에 잘 맞춘 글러브가 좋은 글러브라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작업 과정은.“제가 선호하는 방법은, 글러브가 작업실에 입고되면 먼저 끈을 모두 풉니다. 글러브 손가락 사이를 잡아주는 끈이 본체를 만지는 데 방해가 되는 경우가 있어 끈과 웹을 모두 분리해 따로 길들인 후 다시 조립합니다. 그 후 글러브를 쉴 새 없이 문대고 각을 잡아 형태와 구조를 만들며 기능성을 부여합니다. 마지막으로 웹과 끈을 다시 끼우고 조립하는 순서로 작업이 진행됩니다.”
롯데 자이언츠 포수 손성빈(오른쪽) 미트 작업 후 함께. [사진=본인 제공]
롯데 자이언츠 포수 손성빈 미트. [사진=본인 제공]
- 같은 포지션이어도 선수마다 글러브 구조를 바꾸는 이유는.“사람마다 손의 길이, 크기, 폭이 모두 다르고, 선수들마다 공을 잡는 습관도 다릅니다. 어떤 선수는 손가락 쪽에 가깝게, 또 어떤 선수는 손바닥 쪽에 가깝게 잡죠. 개인별로 다양한 변수들이 있기 때문에, 이런 차이를 고려해 각자에 맞게 조정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작업 하나를 완성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평균 1시간 정도 걸립니다. 하지만 말을 안 듣는 글러브는 작업 시간이 더 길어질 수 있고, 특히 포수 미트는 두껍고 딱딱해서 길들이는 데 최대 3시간까지 걸리기도 합니다.”
MVPJ와 함께 했던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명단. [사진=본인 제공]
- 글러브 작업에도 트렌드가 있는지.“예전에는 바닥이 넓은 글러브가 트렌드였지만, 앞으로는 글러브 바닥을 점점 좁게 길들이는 방식이 트렌드가 될 것 같습니다. 최근 타자들의 타구 속도가 크게 빨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닥이 넓으면 글러브를 오므려야 공을 잡을 수 있지만, 바닥이 좁으면 오므리지 않고 글러브를 갖다 대기만 해도 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수의 프로야구 선수들이 MVPJ 작업실을 찾는 이유는.“물론 유명 선수들도 있지만, 제 작업실을 찾는 대부분의 선수들은 더 잘하고 싶다는 절실한 마음을 갖고 옵니다. 그들의 요구를 빠르게 파악해 기존 글러브의 불편한 점을 개선해 주면, 실제로 성과가 나타나는 선수들이 생기고, 그런 선수들이 입소문을 내면서 더 많은 선수들이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또 제가 운영하는 유튜브를 보고 연락하는 경우도 있습니다.선수뿐만 아니라 글러브를 맡기는 모든 고객분들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하려 노력하고,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은 충분히 설명합니다. 사용하다 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사후 관리도 꼼꼼히 하고 있습니다.”- 프로의 의뢰와 상담이 이뤄지는 과정은.“직접 작업실을 방문하는 경우도 있고, 택배로 보내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작업 과정이나 이야기가 유튜브 콘텐츠로 재미있을 거 같으면, 직접 찾아가 촬영하며 피드백을 주고받기도 합니다.처음 작업하는 선수들은 가능한 직접 만나 상담하려 노력하고, 만약 직접 만나기 어렵다면 주변에서 제가 길들여준 글러브를 사용하는 선수의 글러브를 써보고 불편한 점을 얘기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또 선수 본인이 가장 잘 썼던 글러브를 보여주면서 어떤 점이 불편했는지 자세히 듣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작업에 반영합니다.”
김혜성(오른쪽) 출국 전 글러브 점검. [사진=본인 제공]
LA 다저스 김혜성 글러브. [사진=본인 제공]
- 작업을 맡겼던 프로야구 선수 중, 가장 까다로웠던 선수는.“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요즘은 메이저리거 김혜성(LA 다저스) 선수입니다. 환경이 바뀌고, 잘해야 하는 상황이라 무한 경쟁을 이겨내야 하기에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서 최대한 잘 맞춰주려고 노력합니다.”
MVPJ 글러브와 함께한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키스톤 콤비. 김주원(왼쪽)과 김혜성.
- 작업한 글러브를 착용하고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어떤지.“처음에는 심장이 쿵쾅거릴 정도로 큰 희열을 느꼈는데, 지금은 선수들이 제가 작업한 글러브를 사용하지 않는 것에 더 신경을 씁니다. 작업이 잘 안 됐을 수도 있기 때문에 왜 쓰지 않는지 많이 고민합니다. 가능하면 선수들로부터 피드백을 받고 싶지만, 시즌 중에는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가 많아 답답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제 글러브를 착용하고 경기에 나오면 다시 안심하곤 합니다.”
- 글러브가 경기력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인지.“글러브가 어떤 선수의 경기력 향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반대로 글러브 때문에 선수가 제대로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실책이 있을 때면 때로는 제 탓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글러브 작업은 큰 책임감을 안고 해야 하는 일입니다.”
- 기억에 남는 선수와의 에피소드는.“예전에 한창 바쁠 때 전준우(롯데 자이언츠) 선수가 작업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그 글러브를 스프링캠프에 가져가야 한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고, 언제까지 받아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어서 천천히 작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며칠 뒤 출국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때가 연휴 기간이라 직접 전달하기 어려웠고, 게다가 택배가 터미널에 걸리는 일이 생겼습니다. 결국 선수 아내분이 직접 터미널에 가서 글러브를 찾아 전달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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