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큐) 이윤상 객원기자] 공중에서 1.5초.
프리스타일 스키 빅에어는 찰나에 모든 걸 쏟아내는 종목이다. 선수는 두려움과 희열이 교차하는 순간을 위해 묵묵히 훈련을 이어간다.하지만 시각적 화려함과 달리 국내에선 비활성화 종목이라 주목도와 지원이 늘 부족하다.신영섭은 길을 개척하는 스키 빅에어 대표선수다. 대표팀 탈락의 공백기를 견디고 돌아와 2025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경기는 결과가 아니라 경험”이라 말하는 그는 꾸준한 반복과 긍정의 힘으로 열악한 현실을 극복하고 있다. 스포츠산업 일자리 정보를 담는 스포츠JOB아먹기가 만난 국가대표, 신영섭이다.
프리스타일 스키 빅에어 국가대표 신영섭. [사진=본인 제공]
- 소개 부탁드립니다.“안녕하세요. 어린 시절 스키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프리스타일 스키 빅에어 국가대표로 활동하며 세계 무대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현재 소속, 자신 있는 기술은.“프리스타일 스키는 빅에어, 슬로프스타일, 하프파이프 세부 종목으로 나뉩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빅에어를 주력으로 하고 있습니다. 가장 자신 있는 기술은 ‘레프트 폴틴폴’, 즉 1440도 회전 기술입니다. 공중에서 회전과 그랩을 결합해 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는 기술로 제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 일반 대중에게는 낯선 프리스타일 스키를 소개한다면.“빅에어는 이름 그대로 거대한 점프대에서 날아오르며 공중 동작을 펼치는 종목입니다. 공중에 떠 있는 시간은 1~1.5초 남짓이지만, 그 순간 자신이 가진 예술성과 기술을 모두 표현해야 합니다. 보는 이들에게는 화려한 스펙터클을, 선수에게는 극한의 몰입과 희열을 선사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최근 출전 대회는.“단연 아시안게임입니다. 제 커리어에서 가장 큰 의미를 남긴 무대였고, 동메달을 목에 걸던 순간의 감정은 아직도 선명합니다.”
2025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시상식(오른쪽 첫 번째). [사진=본인 제공]
-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땄을 때 감정은.“메달을 따낸 순간 가장 먼저 할머니가 떠올랐고 이어 부모님 생각이 났습니다. ‘내가 해냈구나,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가장 크게 밀려왔습니다. 동시에 ‘운도 따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행운과 노력이 함께 만든 결과였다고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국가대표가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노력이 있었는지.“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묵묵히 지원해주셨어요. 제가 밤늦게까지 훈련하는 모습을 보시곤 아무 말 없이 제 손을 잡아주시던 장면이 기억납니다. 저 역시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빠른 시기에 대표팀에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과. [사진=본인 제공]
- 국가대표 제외 후 회복에 가장 큰 원동력은.“탈락의 아쉬움이었습니다. 시스템을 잘 몰라 더 안타까웠고 그만큼 다시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습니다. 믿기 힘들었지만 스스로를 믿고 봉사활동을 병행하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쓰레기 줍기 같은 작은 봉사였지만 ‘운을 쌓는다’는 마음으로 꾸준히 이어갔습니다.부정적인 감정에 오래 머물면 더 내려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긍정적으로 포장하려 했습니다. 스스로를 속이더라도 ‘괜찮다’고 말하며 버텼던 게 결국 다시 올라올 힘이 됐습니다.”- 국가대표로 복귀했을 때 달라진 점은.“공백기 동안 외로움과 많이 싸웠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통해 외로움 자체와 친해졌고 혼자 있는 시간이 행복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훈련이나 기술에 더 깊게 집중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제 자신과 마주하는 법을 배운 게 가장 큰 변화입니다.”- 하루 훈련 루틴은.“아침에 일어나면 러닝 2~3km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후 명상이나 독서로 마음을 비우고, 점프대에서 4~5시간 집중적으로 훈련합니다. 중간중간 맨몸 운동이나 발바닥 근육을 풀어주는 운동을 통해 몸을 관리합니다. 단순히 기술만 반복하는 게 아니라 몸과 마음을 동시에 준비하는 루틴을 지향합니다.”- 체력, 기술, 멘탈 중 가장 집중해서 관리하는 영역은.“모두 중요하지만 요즘은 지식을 보완하려고 합니다. 경험만 쌓이다 보니 그 경험을 지탱할 이론적·철학적 기반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심리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통해 멘탈을 단단히 하고 경험을 더 깊이 있게 소화하고 싶습니다.”- 실전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훈련하는지.
“예전에는 상체 위주의 힘에 의존했는데 지금은 하체와 발바닥에 중심을 두려 합니다. 몸의 균형을 잡는 데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체감하고 있어요. 이런 변화를 통해 실전 감각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주로 어떤 나라에서 훈련하거나 대회를 치르나요?“한국에서 가장 많은 대회를 치르지만 훈련은 주로 뉴질랜드나 스위스에서 합니다. 유럽 투어를 돌며 성적을 내야 월드컵 출전권을 얻고 거기서 성과를 쌓아야 올림픽으로 이어집니다. 계단식으로 쌓아가는 구조라 매번 해외 경험이 소중합니다.”- 훈련 중 가장 현실적인 어려움은.
“비용 문제입니다. 스키 장비는 자주 부러지고 가격도 만만치 않습니다. 대표팀에 소속되지 않은 선수들은 해외 훈련까지 자비로 감당해야 합니다. 부모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 늘 마음이 무겁습니다.”- 스핀을 도는 순간 어떤 생각을 하는지.“솔직히 무섭습니다. 하지만 그 무서움을 이겨내는 순간 찾아오는 희열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비우고 도전합니다. 그게 가장 아름다운 방식이라고 믿습니다.”
훈련 장면. [사진=본인 제공]
- 프리스타일 스키는 부상 위험이 큰 종목인데 겪은 적이 있는지.“운 좋게 큰 부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주변 동료들이 크게 다치는 걸 많이 봤습니다. 저보다 훨씬 잘하는 형·동생들이 부상으로 스키를 포기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나는 다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관리를 더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힘든 시기에는 책에서 위로를 얻기도 했습니다. 서점에서 산 작은 행운 부적을 늘 휴대폰 케이스에 끼워 다니며 ‘나는 행운이 따른다’고 되뇌던 기억이 있습니다.”- 위험 상황을 예방하거나 부상을 막기 위한 루틴은.“실전 훈련 전 워밍업을 훨씬 강도 높게 합니다. 몸에 열을 충분히 내고 들어가야 부상 확률이 줄어듭니다. 오히려 훈련 때 힘이 빠지더라도 몸을 완전히 풀고 들어가는 게 제 원칙입니다.”- 경기 중 관중과 호흡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일부러 즐기는지.“처음에는 간절함 하나로만 경기에 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즐기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관중과의 호흡은 억지로가 아니라 진심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그 두 가지를 균형 있게 가져가고 싶습니다.”
동계아시안게임에서. [사진=스포티비 중계화면 캡처]
- 경기란 어떤 의미인지.“결과를 보여주는 무대이지만 동시에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하나 쌓아가는 경험이 제 인생의 자산입니다.”- 승부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배움입니다. 그리고 배움을 받아들이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태도가 있어야 성장도 가능하니까요.”- 강점은.“꾸준함입니다. 긍정적인 태도로 같은 일을 반복할 수 있다는 게 제 가장 큰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지도자 외 다른 진로를 고민한다면.“지금은 선수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다만 제 종목의 특성상 패션이나 모델 활동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스키와 함께 제 이미지를 남길 수 있다면 새로운 도전도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은퇴 후 진로 정보가 많지 않은데 선배들은 주로 어떤 길을 가는지.“주로 코치로 남아 후배를 지도하고 있습니다. 그 시간을 얼마나 소중히 여겨왔는지가 보입니다. 저 역시 언젠가 더 큰 꿈을 품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선수 삶이 준 태도는.“작은 것이라도 반복하고 꾸준히 이어가는 힘이 중요하다는 걸 배웠습니다. 부정적인 상황을 긍정적으로 포장하는 태도도 삶을 지탱해주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 운동선수의 삶은 겉으로는 멋져 보이지만 현실은 다르다던데.“화려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희생이 많습니다. 또래 학생들이 누리는 여행이나 동아리 활동은 거의 못 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의 값진 경험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는 유소년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처음에는 단순한 재미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재미 뒤에는 분명히 힘든 순간이 따라옵니다. 그때 긍정적인 마음으로 잘 포장하고 견뎌내면 큰 자산이 될 거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신영섭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는지.“‘지나가는 꽃’ 같은 선수로 남고 싶습니다. 꽃은 짧게 피어도 향기는 오래 남잖아요. 저 역시 스키로 남긴 향기가 오래 기억되길 바랍니다.”